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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순례] “무상으로 주어진 은총, 어둔 밤 그리고 사랑을 통한 회복”
첨부 작성일 2019-08-16 조회 373

성지순례를 다녀오다

 

“무상으로 주어진 은총, 어둔 밤 그리고 사랑을 통한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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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창 미카엘 / 평화방송여행사




인간을 뜻하는 human은 라틴어 humando에서 왔습니다. 그 뜻은 ‘매장한다’는 뜻입니다. ‘인간’ 그리고 ‘겸손(humilitatem)’이란 단어가 ‘매장’이라는 뜻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죠. 우리는 죽음으로 가는 길에 있고 결코 우리는 스스로 부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기본적인 삶 역시 우리가 스스로 의식하고 조절하지 못하는 많은 것-때로는 은총이라고 표현되는-들로 인해 이루어져 갑니다. 숨 쉬는 것 심장이 뛰는 것조차 매 순간 내가 의식하고 조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자의식 밖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매 호흡을 의식하면서 숨 쉬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주어진 이 삶의 매 순간을 감사하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순례자들의 가쁜 숨소리가 들리고 옮기는 다리가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숙소에 들어가 퉁퉁 부은 다리를 움켜쥐고 한숨을 내쉬고 후회를 하면서도, 목적지를 향한 순례자들의 마음은 더 뜨겁게 타오릅니다.

어렵게 시간을 내고 경제적인 부담을 지면서도, 수려한 풍광이나 아늑한 휴식처를 제쳐두고 때로는 황량하거나 오래되고 낡은 경당 한켠을 찾아가는 성지순례의 궁극적 이유는 결국 “내가 스스로 조절하고 의지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으며 우리는 죽음으로 가는 길에 서 있는 순례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 순례의 끝은 내 무릎이 저절로 땅에 닿고 내 머리가 바닥을 향하게 되는 겸손의 체험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스스로 만드신 피조물로 오셨습니다. 더구나 그 피조물 중에서도 가장 하찮고 비천한 모습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허무한 죽음!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피조물로서의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걷는다고 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서 자칫 저 멀리 있다고만 느껴지고 환상으로만 간직했던 찬란히 빛나는 천국의 모습을 깨고 “내 모든 것을 내어줄 때만 도달할 수 있는 가난하고 구체적인 하느님 나라”의 실재(實在, reality)를 지금 이곳에서 처절하게 느끼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하느님 나라의 실재는 사실 멀리 있지도 않고 특별한 곳에서만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걸음을 옮기는 그 어떤 곳이든 하느님의 다스림 속에 살아가기만 하면 어떤 곳이든 가능한 체험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지순례를 준비하고 순례자들의 특별한 여정에 동반자로 참여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보다 역설적인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지순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꼭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신앙인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가 순례라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일들이 사실은 은총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만 한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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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가졌던 첫 시간에 이미 우리는 하느님과 사랑에 빠지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과 가까워졌고 더 가까워지기를 원했습니다. 달콤하고 한없이 기뻤던 감정의 유희를 느끼는 시간이 지났고, 이제는 좀 더 하느님의 다른 모습을 바라보고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도 더 깊이 사랑해야 하는 그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그 깊은 사랑이 불가능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유혹이 우리를 덮치고 날카롭고 거대한 의심의 불길이 우리를 감싸는 것을 체험합니다. 우리 스스로 만든 지옥과 같은 심연 속에서 깊은 밤을 보내게 됩니다. 끊임없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존재 안에만 머무는 것이 세상의 논리와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그 누가 죽음을 목전에 둔 골고 타 언덕을 같이 오르고 싶을까요? 그 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존재와 사랑에 빠지고 싶겠습니까?

위선에 빠져서 살아가는 많은 신앙인들은 이 사실을 용기 내어 말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아주 당연하고 슬프게도 “당신을 따르기가 힘들며 그렇게 살기 싫습니다.”라는 용기 있는 고백입니다. 그 진실은 말하는 것이 두렵고 부끄럽다고 하더라도 꼭 거쳐야 하는 관문과도 같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 a Cruce)께서 말하셨던 ‘깊고 어둔 밤’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캄캄한 밤 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죠. 누구나 그렇습니다. 우리가 모범으로 삼고 있는 성인들 중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런 시간을 보냈고 심지어 수없이 그 시간을 재차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깊은 어둠에 있는 그 시간에도 우리보다 훨씬 더 일찍부터 우리를 사랑하셨던 하느님께서는 잃어버린 아들을 기다리는 그 마음 그대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냥 그 옆에 서 계시는 것이 아니라 저희보다 더 슬프게 울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그분을 바라 보지 않고 떨어져 나가려고 하는 아픔마저도 기 꺼이 수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Margaret Mary Alacoque)의 환시에서처럼 여전히 그분은 우리 때문에 고통받고 계시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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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성지순례의 필요성은 여기서 찾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 어떤 장소에서도 순례할 수 있지만 특별히 나의 그 깊은 밤을 겪었던 많은 이들의 시간을 특별히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그 밤을 지나 새벽을 맞았던 이들을 통해 희망과 평화를 가지게 됩니다.

부자 아버지를 두고 어둠 속에서 방황했던 한 사람의 회심으로 인해 아시시 서편의 처형장이 천국의 언덕으로 변한 것을 보며 희망을 노래하고, 80명의 봉쇄 수도자들이 무서운 전염병 때문에 시체로 가득한 도시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기쁘게 매장해 드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결국 엔 80명 모두가 페스트로 죽음을 같이했던 그 곳 에서 ‘절망과 죽음의 그늘’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음을 알게 되니까 말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그분께서 예루살렘의 무덤 안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때 오히려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아빌라에 들어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천대받았던 유다인 중 한 여인이 복음의 정신과 마리아의 순명을 어떻게 회복시켰는지 알게 됩니다. 아비뇽의 옛 교황청 안에서 인간이 이룬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 들이 결국 하느님이 주도권을 가진 사건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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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세대에도 어떤 사람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그 어둔 밤을 우리 역시 지나면서, 그분의 사랑으로부터 아무리 자주 우리가 돌아선다 해도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좀 더 사랑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내 이웃을 따스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지체로 살아가면서 우리보다 먼저 새벽을 맞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간직한 우리의 이웃이며 그들 역시 그분과 함께 나를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닮아가도록 기도하고 격려해 줍니다.

때로는 위대한 행위와 강력한 힘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고 구원에 이르는 보증처럼 생각되어 지더라도 그리고 나의 삶이 하찮고 미약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더라도, 오직 내 주위의 작은 선함과 가느다란 희망이 보인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오직 사랑만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십자가에 매달린 그분이 보여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요한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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