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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목]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첨부 작성일 2019-11-27 조회 219

사목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손정명 수녀 / 선한목자예수수녀회





그리스도인들의 교회 일치에 대해 생각을 해봅시다. 교회 일치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의 일치와 갈라진 그리스도인들과의 일치입니다. 여기서는 가톨릭교회 안에서의 일치와 관련된 본당 상황을 중심으로 보겠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본당에는 사목협의회가 아주 잘 조직되어 있습니다. 본당의 각 단체에는 많은 평신도 봉사자들이 존재하며 공동합의적 삶이 잘되는 곳도 있지만, 사제와 평신도 또는 평신도들 간에 많은 갈등이 있는 곳도 종종 나타납니 다. 이유 가운데 흔히 성직자 중심주의나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대화 부족, 그리고 평신도들 간의 대화 부족 및 인간적 미성숙이 공동체의 분열을 일으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목적 지향에 따라 본당이 운영되고 있는가도 매우 중요 하다고 봅니다. 특별히 사제들의 착한 목자 영성이 심화되면서 운영되는 곳도 있지만, 사제를 단순히 성사를 집전하는 기능인으로서 이해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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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요한복음 21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시면서 “내 양들을 돌보아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목자가 되라는 말씀이십니다. 저는 1990년도에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Modena)에서 목자와 양 떼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넓은 초원에서 수 백 마리의 양들이 풀을 맛있게 뜯어 먹고 있었습 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있는 목자가 뭐라고 하니 까 양들이 귀를 모두 쫑긋 세우며 조용히 듣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너무 예뻤습니다. 제가 신기해하니까 목자는 저에게 자신의 지팡이를 주면서 양몰이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지팡이를 땅에 쿵쿵 치라고 해서 그대로 하니까 양들의 귀가 역시 쫑긋 세워지면서 모두 저를 향해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겁이 났지만 계속 서 있었는데 저에게 가까이 오던 양들이 자기들 목자가 아님을 알고 즉시 모두 등을 돌리고 저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을 놓치기 싫어서 동행했던 수녀님에게 사진을 빨리 찍어달라 부탁했습니다. 사진을 언뜻 보면 양들 중앙에 있는 목자 처럼 제가 보이지만 실제로 그 양들은 저에게서 등을 돌리고 멀어지는 장면이 포착된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많이 서운했습니다. 사진 찍는 순간만이라도 등을 안 돌렸으면 고마웠을 텐데 하고요. 이어서 목자의 양몰이 사투리를 어설프게 흉내 내니까 괴상한 소리에 양들의 귀가 모두 초긴장 상태로 듣다가 진짜가 아니라는 판단을 한 뒤에는 다시 풀을 뜯었습니다. 그러나 목자가 신호를 보내면서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모든 양이 즉시 귀를 쫑긋 세워 목자의 소리를 확인한 뒤에 무리를 지어 따라갔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게 떼를 지어 움직이는 그 장면이야말로 장엄한 예술 중의 예술이었습니다. 목자는 2개의 막대기를 가진다고 합니다. 짧고 가느다란 막대기는 방향을 제시하거나 양 떼를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하고, 긴 지팡이로는 양들이 이동할 때에 목자가 땅을 치면서 인도를 하는데 양들은 그 진동 소리를 듣고 따라간다고 합니다. 양들은 늘 고개를 숙이고 이 동하기에 비록 눈으로 목자의 존재를 확인하지는 못해도 지팡이의 울리는 소리를 듣고 안심하고 따라갑니다. 제가 본 여러 그룹의 양들은 언제나 풀을 먹고 있었습니다. 늘 배가 고픈가 봅니다. 목자와 양을 바라볼 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양들은 목자의 소리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고 있고 목자는 양들을 바라보면서 풀밭과 물을 찾아 양들을 인도하고 그것으로 양육하며 다른 짐승으로부터 보호합니다. 목자와 양 사이에는 특별한 신뢰가 있었고 그들 가운데 나타나는 소리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나름의 고유한 역할수행 속에 소통이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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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를 구분하는 양들

 

 

착한 목자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유일한 목자입니다. 구약에서 모세는 목자였고 라헬 역시 소녀 시절에 이미 목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목자의 세계에서는 남녀노소가 모두 목자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점은 본당사제는 예수님의 양이며 또한 목자이고, 본당의 사목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의 봉사자들 역시 착한 목자 예수님의 양이며 동시에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거나 엄마의 마음을 가지고 동료 양들과 함께 걸어가는 ‘작은 목자’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당의 성직자들과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들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착한 목자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친교의 삶을 살아 자신의 영적 생활의 진보를 위해 우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가끔 본당에서 아주 열심히 봉사하던 청년을 포함해서 중요한 책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던 이들 가운데 어느 날부터 아주 성당과 담을 쌓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인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근본 이유가 무엇일까요? 누구를 바라보며 본당에서 봉사합니까? 혹시 본당사제들 또는 다른 곳에 시선이 집중되어 하느님을 멀리 보내드린 것은 아닙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위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시선이 집중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봉사자들이 봉사하는 동기와 자신의 영적 생활을 짚어보는 기회를 가끔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느님 중심인지 기도의 삶 없이 인간적 욕구 충족을 위한 활동 중심인지를 보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에게 해당되는 중요한 성찰 부분입니다. 본당사제들이나 봉사자들은 본당 운영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공통으로 지니고 있지만 사목적 열정이 거기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영성 생활을 통해 하느님 체험이 좀 더 심화할수록 그분의 양들을 돌보고 바른길로 인도하고 싶은 사목적 열정이 더욱 강하게 솟아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도구로 쓰일 다양한 측면의 협력자들의 중요성을 느끼며 함께 하려는 마음이 커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거기에는 상호 존중의 태도와 서로에게 경청하는 태도가 있어야 하며 이렇게 대화하는 훈련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교계제도를 보통 피라미드 형태로 표현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공동합의적 교회의 모습이 ‘역삼각형’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삼각형의 정점에 권위를 행사하는 사도단을 두셨고 그 안에서 베드로 사도는 ‘반석’이며 믿음 안에서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의 이미지는 역삼각형처럼, 그 정점이 밑변의 아래쪽에 있다는 것입니다. 권위를 행사하는 이들은 ‘봉사자’(ministry)라고 불립니다. 모든 이 가운데 가장 작은 이들이라는 의미에서입니다. 역삼각형은 사제들은 물론이고 본당의 각 단체 봉사자들에게도 해당하는 겸손한 태도의 이미지입니다. 특별히 가난한 이들을 향한 연민의 눈으로 시대의 징표를 인식하면서 물질적, 영적, 심리적, 사회적 필요에 응답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양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여정에 동반자들의 노력이 있을 때 공동체 실현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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