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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겨울 / 계간 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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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눔] 밀알 하나가 이뤄낸 기적
첨부 작성일 2019-11-30 조회 230

나의 신앙 선조

 

밀알 하나가 이뤄낸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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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하나 스콜라스티카 / 서울대교구 방이동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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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성당에서 엄마와 세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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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막냇동생 리나의 첫영성체



“다녀왔습니다.”


언제나 집에 들어서며 마주치는 광경은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동그란 어깨, 모아쥔 두 손에는 묵주, 예수님과 성모님 앞의 어머니는 눈웃음으로 맞이해 주시고는 이내 기도로 돌아가십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마주하는 모습입니다. 그 모습에는 종종 외할머니가 겹쳐집니다. 저도 언젠가 나이가 들면 외할머니, 어머니와 똑같은 모습으로 기도하고 있을까요? 외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믿으셨다는 천주교가 저희 가정의 종교입니다.


열렬한 신자 집안에서 나고 자라신 어머니께는 신앙 안에서의 결혼을 희망하셨고, 어머니께 반하셨던 아버지는 다행히 대학시절 세례를 받으신 분이라 결혼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집안의 유일한 신자셨고 줄곧 열심히 신앙생활을 이어오신 건 아니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모시게 된 시부모님은 천주교에 호의적이지 않으셨기 때문에 어머니께서는 오랜 기간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으셨다고 합니다. 제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도 종교에 대한 친척들의 냉대가 남아 있는 걸로 봐서는 어머니가 직면하셨을 상황은 더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꾸준히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알게 되고 하느님 안에서 성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해 달라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기도를 줄곧 하시는 모습에 속이 상하기도 하고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많았습니다. 서운한 일이라도 있는 날에는 어린 마음에 ‘우리 엄마 기도가 아깝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참 놀랍지요? 생각지도 못했던 때에,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하느님 을 만나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를 모시고 있던 터라 성당에서 장례를 모셨는데 성당 식구들의 연도, 신부님들의 미사를 함께하는 과정에서 감화되신 큰고모께서 성당에 가보고 싶으시다는 연락에 저희 가족은 모두 놀랐답니다. 시간이 흐르자, “도대체 신이 어디 있는지, 직접 봤는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는데 누구한테 무엇을 기도하는지”를 묻곤 하던 사촌 오빠의 마음을 하느님께서 움직이셨습니다. 단순히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변하였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 인정하시던 분이 “보이지도 않는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삶의 모든 것을 의탁한다.”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해진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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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첫영성체 후 동생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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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베드로 성전 성지순례



몇 년 뒤, 큰아버지의 장례식에 조심스럽게 천주교식 예식을 권하는 어머니께 화를 내셨던 큰어머니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셨습니다. 큰어머니의 삶이 기쁨으로 물드는 것을 본 사촌 오빠들도 놀라워하며 하느님께 마음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다시는 성당 소리 하지도 말라.”는 얘기가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어떻게 그 마음들이 바뀐 걸까요?

 

기존에 알아왔던 모습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식사 전 성호를 긋고 두 손을 모을 때마다 눈치가 보이던 명절의 식탁, 미묘하게 감도는 낯선 공기, 이방인을 대하는 것과 같은 태도, 하느님이나 성당에 대한 크고 작은 오해들을 생각하면 참 놀라운 일입니다. 이제 와서야 그 모두가 ‘하느님을 정말 몰라서’ 생긴 일이었구나. 참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직접 만나볼 기회가 없어서’ 하느님께 가지 못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어머니의 그 기도만큼은 헛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해를 가하지도, 폐를 끼치지도 않는 나의 종교를 가지고 타박을 하니 야속하게만 느껴져, “차라리 남을 위해 기도하시고 그 기도는 하지 마시라.”고 조른 적도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 어느 기도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어머니의 기도는 하늘에 차곡차곡 쌓여갔나 봅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때에 이토록 놀랍게 이뤄 나가시는 것을 보니 말이지요.

 

지나고 보니 어머니는 하느님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제 몸을 잘 썩혀 싹을 틔우셨구나. 그렇게 꾸준히 기도하며 걸어오신 덕에 이렇게 한 사람, 한 가정씩 하느님 품 안으로 초대하시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고 겪은 것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많이 부족한 저도 언젠가 주님의 좋은 밀알이 될 수 있을까요? 꾸준히 기도하고 바라보면 어떨까요? 우리의 삶이 밀알 한 알씩의 기적이 될 수 있도록! 하느님 나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금 이 순간 화살기도를 바칩니다. 그 어떤 기도도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땅에 떨어뜨려버리지 않으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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