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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탐방] 천주교 서울 순례길 2코스- ‘생명의 길’을 걷다
첨부 작성일 2019-11-30 조회 215

천주교 서울 순례길 2코스

- ‘생명의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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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리디아 / 한국평협 순교자현양위원장





‘말씀의 길’에 이어서, 7월 13일에 2코스 ‘생명의 길’을 걷기 위해 가회동 성당에 모였다.


한여름의 해를 조금이나마 피해 보려고 아침 시간에 시작했다. 평협 위원들뿐만 아니라 회원 단체에서도 함께하여 참석하신 분들이 60명이 넘었다.


1코스 ‘말씀의 길’을 걸으며 한국 천주교회의 시작이 어떠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고, 어쩌면 가장 많은 순교자들이 걸었을 ‘생명의 길’을 걸으며 순교자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는 과연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순례길 가운데 가장 짧은 길이지만 많은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구간으로 임금의 명령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우선시하는 천주교를 사학으로 규정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가해졌던 박해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5.9km의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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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소문 순교성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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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순례길 2를 걷는 순례객들


중국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이 땅에 들어와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첫 미사를 봉헌하였던 장소인 ‘가회동성당’에서 시작기도를 함께하고 출발하 여 ‘광화문 시복 터’로 향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방한하여 집전하신 미사에서 124위 복자들의 이름이 불리어졌던 광화문 광장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라가 금하는 천주학을 버리지 못해 죽음으로 답했지만, 거룩한 이름으로 다시 불리어진 시간을 기억하기 위하여 경복궁의 정문 앞 시복 터에 바닥돌을 설치하고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이곳을 지나는 이들마다 그분들을 기억할 것이다.

 

궁궐 앞으로 늘어서 있는 육조 거리를 가다보면 우리 순교자들이 끌려가 고초를 겪었던 ‘형조 터’와 만난다. 육조 중 하나로 추조라고도 불렸고 법률, 소송, 형벌 등을 관할하며 조선시대 사법기관의 한 축을 이루었던 곳이다.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형조로 끌려간 분들 가운데 많은 매를 맞고 귀양 간, 명례방 신앙 공동체의 집주인 김범우 토마스를 시작으로 박해가 이어지면서 수많은 신자들이 압송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며 순교의 길을 걸었던 곳이다.

 

다음으로 가는 곳은 ‘한국천주교 순교 터이자 신앙증거 터’인 ‘의금부 터’다. 왕권을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해 왕명을 받들어, 왕권을 부정하고 유교도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죄인을 추국하는 최고사법기관이었다. 신앙을 지키고자 하였던 천주교인들도 이곳으로 끌려와 문초와 형벌에도 신앙을 증거하였고 사형선고를 받았던 장소다.

 

이제 길을 건너 가까운 곳에 역시 순교 터이자 신앙증거 터인 ‘전옥서 터’로 간다. 조선시대, 형조의 지휘를 받아 죄수를 관장하는 곳으로 박해 때에 많은 신자들이 형조로 이송되어 심문을 받고, 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수감되어 굶주림과 기갈 등을 겪으면서도 고난을 참아내며 신앙을 증거하며 순교한 곳이다.

 

다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우포도청 터’로 간다. 포청이라고도 불리며 서울 서북부와 경기우도를 관할하고 왕권보호우선의 한성부 치안담당의 역할을 하였다.

 

포도청에서 신자들을 심문할 때는 형조보다도 더 심한 매질을 해서 심문 과정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으며 교수형이나 백지사형이 시행되었고, 서울의 마지막 순교 터로서 좌포도청과 함께 박해시기에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한 곳이다. 성인 22분과 복자 5분이 포도청에서 순교했다.

 

천주교 서울 순례길은 시청광장을 지나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고, 시대의 변환과 역사의 소용돌이를 함께 겪은 정동길을 걷고, 격동기 조선의 역사를 되새겨보며 ‘경기감영 터’를 향해 걷는다.

 

경기관찰사는 일반 행정과 군정, 사법, 경찰 등 정사를 보는 관아로, 오늘날의 경기도청이다. 한국천주교회 창립 이후, 확산된 경기지역 신 앙공동체는 신유박해로 신자들이 체포되어 경기 감영에서 형벌과 문초를 받았다. 특히, 경기도 양근의 조용삼은 예비신자로 잡혀와 경기감영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하고 모진 형벌 에도 배교하지 않고 옥중에서 순교하여 광화문에서 복자품에 오르셨기에 감동을 더한다.

 

다시 한양의 처형지였던 ‘서소문밖 네거리 순교성지’를 향해 간다. 조선시대 수도 ‘한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이 있었다. 서소문은 남대문 밖에서 칠패시장으로 통하는 길에 위치한 소문으로 의금부와 포도청이 가깝고 시장이 있었던 서소문밖 네 거리는 조선의 공식 사형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었다.

 

서소문밖 네거리에서 처형되어 이름이 밝혀지신 분은 100여 분이며, 44명의 성인과 27위 복자가 탄생한 우리나라 최대 평신도 순교성지다.

 

현양탑만이 공원의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서울대교구는 몇 년간 심혈을 기울여 버려진 땅으로 두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고, 지난 6월 1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으로 새롭게 자리 잡아 많은 관람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지상의 현양탑에서 시작하여 지하 3층까지 이어지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많은 볼거리와 교육의 장으로 한몫을 하고 있다.

 

이제 오늘 순례길의 마지막 도착지인 ‘중림동 약현성당’이다. 1886년 한불수호조약 이후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면서 신자가 증가해 서소문밖 수레골에 설립한 문밖 공소는 경기도에서 황해도까지 넓은 지역을 관할하였다. 공소의 신자수가 많아지자 1891년 명동본당에서 분리 설정된 서울의 두 번째 본당으로 1892년에 서소문 순교성지가 내려다보이는 약현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벽돌식 성전이 지어졌다. 4년 후,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최초 사제 서품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약현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양식이 절충된 국가 사적 제252호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재이며 100주년이 되었을 때 순례기념성당과 순교자기념관을 건립하였고 순교 관련 역사와 교회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짧은 구간이지만 주님을 위한 죽음을 선택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향해 가신 순교자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생명의 길로 향하는 기쁜 순례의 길이 되었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며 ‘생명의 길’ 코스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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