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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봄 / 계간 67호
    마음의 환경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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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사] 마음의 환경보호
첨부 작성일 2020-03-04 조회 494

인사말

 

마음의 환경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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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송 베네딕토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환경보호에 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1960-70년대에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의 구호 속에 파묻혀서 관심 밖에 있었던 자연과 환경에 대해 늦게라도 눈을 뜬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은 행복한 삶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환경이 오염되고 파괴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외적인 환경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내적인 환경입니다. 하지만 인간 내면의 환경오염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실상 우리 주위에는 내면의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들이 무수히 널려 있는 데도 말입니다. 신문과 방송 매체, SNS를 통해 쏟아지는 선입견과 편견, 일방적 보도, 거짓 뉴스, 폭력성, 선정적 충동 등이 그것입 니다. 아울러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겪게 되는 좌절과 실망, 그로 인한 부정적 감정, 미움과 증오심도 오염 요인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내면의 뜰을 더럽히고 망가뜨립니다.


우리의 내면이 오염되면 온갖 나쁜 생각들이 솟아 나와 자신은 물론 주위를 혼탁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이런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셨습니다.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살인, 간음, 불륜, 도둑질, 거짓 증언, 중상이 나온다. 이러한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마태 15,19) 눈에 보이는 자연과 세상의 오염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오염에 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4세기의 그리스도교 수도자들은 내면을 정화 (淨化)하기 위해서 일상의 삶과 공간적으로 결별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정적 감정과 공격적 성향, 그리고 무의식적인 욕구와 과도한 열정으로 세상을 오염시키지 않기 위해서 고독한 사막으로 물러갔습니다. 수도자들은 혼탁한 세상에서 자기 한 몸 구하겠다는 이기심에서 세상을 등졌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기 전에 우선 자기 자신을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인간 내면에 자리하는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얼마나 파괴적인 힘을 가졌는지를 잘 알았기 때문에 먼저 자신을 내적으로 정화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세상에 나섬으로써 세상이 더 치유되고 더 밝아질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물론 다른 종교들, 이를테면 불교나 힌두교에서도 묵상과 명상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조용한 시간을 갖게 되면 인간 영혼의 깊은 곳에서 ‘어두운 구름’ 곧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자기비하의 느낌, 치유되지 않은 상처, 실망감과 죄의식 등이 떠오르는 데, 이런 것을 정직하게 대면해야만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향하 는 길이 열립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자신의 문제를 정면으로 들여다보고 거기서 벗어나려는 고된 과정이 두려워서 고요함을 피하게 됩니다. 분주하게 일을 하고, 휴식 시간에도 고요한 곳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시끌벅적한 곳을 즐겨 찾습니다. 이에 편승해서 오락 산업은 소음을 쏟아부으면서 ‘네 자신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구호를 계속 외쳐 댑니다. 여기에 휩쓸리다 보면 결코 자신에게 돌아갈 수 없고, 내면은 잡초로 가득 차고 사막처럼 황폐해지게 됩니다.  


내면이 황폐해졌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는 점점 더 말이 거칠어지고 글이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말과 글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무고한 사람을 해칩니다. 단적인 예가 종종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듯이 젊은 연예인들이 악성 댓글을 보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이런 거칠고 험한 세상을 원치 않습니다. 누구나 서로를 이해해주고 참아주고 감싸 안아주는 세상을 원합니다.


사람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대의 수도자들이 한 것과 유사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비록 공간적으로 사막으로 들어갈 수 없다 해도 ‘일상의 사막’을 찾아가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침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거실 텔레비전을 끄고 자기 방에 들어가서, 승용차 안에서 라디오 소리를 죽이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조용한 마음으로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다듬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님은 침묵은 “영혼이 살아 나가는 데 있어 불가결하고도 놀라운 환경”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침묵을 중대시하는 마음이 고성과 소음과 소란으로 포위당해 있는 우리 안에서 재생”되기를 간절하게 원하셨습니다(1964년 1월 5일 강론에서).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침묵을 통해 내면의 정화를 위해 아주 좋은 공간이 있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에 가는 성당입니다. 성당에서 성체 앞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면서 혼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혼탁한 내면을 다시 청정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여러 번 대담하여 책으로 발간했던 독일의 언론인 페터 제발트(Peter Seewald)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하루에 한 번쯤은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서 어느 성당에 들어가 잠깐이라도 앉아 있는 사람은 삶의 여유와 평화를 느껴볼 수 있다.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던 온갖 잡념들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할 것이다. 어쩌면 그 순간은 창문으로 환한 빛이 스며드는 시간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곧 있을 미사를 위해 제단을 정돈하는 걸 볼 수도 있다. 숨을 고르기에 좋은 시간이다. 그리고 이렇게 작지만 거룩한 변화의 시간이 우리를 질식시킬 것 같은 나쁜 공기를 신선한 산소로 바꿔 줄 수 있지 않을까? 삼십 분 동안 마음의 긴장을 푸는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시간은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수도원의 가르침』, 51쪽)



2020년 새로운 한 해에는 자주 ‘일상의 사막’으로 들어가서 내면을 청정하게 하는 작업에 힘쓰도록 합시다. 평일에도 시간을 내서 성당을 찾아가 성체 앞에 머무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나의 내면이 좀 더 깨끗해지고 밝아질 때 내 주위의 사람과 세상이 조금씩 더 깨끗해지고 밝아질 것입니다. 침묵의 시간, 주님 앞에 머무는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내면이 정화되어 거기서 순화된 말과 착한 행동이 맑은 물처럼 흘러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변화를 통해 내 가정이 변화되고 주변의 세상이 조금씩 변화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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