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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눔] 한국천주교회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담은 나전칠화, 로마 우르바노 대학교에 기증되다
첨부 작성일 2020-03-04 조회 53

「일어나 비추어라」 기증식을 다녀와서

 

한국천주교회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담은 나전칠화, 로마 우르바노 대학교에 기증되다



글·정리 송란희 편집위원





지난 2019년 9월 30일 한국교회에 뜻깊은 행사인 한국천주교회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담은 나전칠화 「일어나 비추어라SURGE, ILLUMINARE」의 기증식이 교황청립 로마 우르바노 대학교에서 열렸다. 지난 2017년 바티칸에서 작품 기증의 실무를 담당한 필자는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요청으로 작품 설치와 기증식을 참관 하기 위해 현장을 다녀왔다. 한국교회의 특징인 자생적 교회탄생과 100년간의 박해를 이겨낸 불굴의 순교 정신을 한국 전통공예로 승화시킨 나전칠화 「일어나 비추어라」의 설치 및 기증식 과정과 우르바노 대학교와 한국교회의 각별한 인연을 정리하여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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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증식 기념 미사는 인류복음화성 장관 필로니 추기경과 김희중 대주교, 비바 몬시뇰, 루감브와 대주교 등이 공동집전하였다.




지난 2019년 9월 30일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교에서 한국천주교회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담은 나전칠화 「일어나 비추어라SURGE, ILLUMINARE」의 축복식 및 기증식이 열렸다. 우르바노 대학교 개강미사 후에 가진 이날 행사에는 필로니 (Fernando Filoni) 추기경, 인류복음화성 차관 프로타제 루감브와(Protase Rugambwa) 대주교, 우르바노 대학교 기숙사 원장 비바(Vincenzo Viva) 몬시뇰, 인류복음화성 문서고 쿠냐(Luis Cũna) 몬시뇰,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주교회의 사무총장 김준철 신부, 로마 한인신학원장 정의철 신부, 작품 기획과 기증을 추진한 최기복 신부, 이백만 주교황청대사, 제작비 전액을 지원한 두산인프라코어 박용만 회장 등 주요 참석자 외에 46개국에서 온 신학생 100여 명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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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바 몬시뇰이 작품 기증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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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백만 주교황청대사와 김의용 소목장, 필로니 추기경, 박용만 회장(오른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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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증식에 참석한 옹청박물관장 최기복 신부, 두산 인프라코어 박 용만 회장, 김희중 대주교, 로마 한인신학원장 정의철 신부, 주교 회의 사무총장 김준철 신부(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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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르바노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부제들. 수원교구와 마산교구 부제들이 큰 도움을 주었다.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의 시작이 그렇듯 긴 여름 방학을 끝내고 다시 모인 사람들의 반가움과 부산스러움이 우르바노 대학교 기숙사 1층 로비를 가득 채웠다. 더욱이 개강미사와 함께 특별 행사가 있다는 것이 예고되어서인지 한눈에 봐도 다양한 손님들이 계속 입구로 들어섰다. 로비에 들어선 사람들은 긴 벽을 가득 채운, 새로 설치된 나전칠화의 규모와 화려함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세로 3m, 가로 9m, 60cm로 규모에서도 대작인 「일어나 비추어라」는 총 3개의 작품이 제작되었다. 제일 먼저 제작된 작품은 현재 경기도 여주 옹기동산청학박물관(관장 최기복 신부)에 전시 중이며, 세 번째 작품은 서울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제2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로마 우르바노 대학교에 설치된 작품은 두 번째로 제작되었다. 지난 2017년 9월 9일~11월 17일까지 열린 바티칸 특별전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 한국천주교회 230년 그리고 서울(Come in cielo così in terra : Seul e i 230 anni della Chiesa Cattolica in Corea)”에 출품되었다가 인류복음화성에 기증되었으며, 기숙사 내부 공사가 끝난 후인 지난해 9월에 설치되었다.

아름답고 장엄한 미사를 마치고 기숙사 1층 메인 로비에서 비바 몬시뇰의 사회로 기증식을 시작했다. 기증식이 열리는 로비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방에서 사진을 찍고 작품을 보며 이야기꽃을 피워 옆 사람의 말소리가 안 들릴 정도 였다. 비바 몬시뇰이 장내를 정리하는 인사를 시작했을 때에야 겨우 소란이 가라앉았다. 몬시뇰이 주요 참석자를 일일이 소개한 후, 나전칠화 제작과 기증을 위해 애쓴 최기복 신부님이 직접 작품 설명을 하였다.

최 신부님은 작품 기획 의도와 작품에서 보여 주는 상징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작품이 전 세계 신학생과 신부들이 오가는 이 장소에 설치된 것이 무척 감격스럽다. 각 지역에서 바티칸으로 유학을 와 공부하는 신학생과 신부들이 한국천주교회의 순교 정신을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될 것 같 다.”고 덧붙였다. 또한 앞으로도 “한국교회와 로마 교황성좌 간에 긴밀한 유대와 일치가 이루어지기 바란다.”는 기대도 더불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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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전칠화 「일어나 비추어라」, 300×960cm, 2017


이어 비바 몬시뇰이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이신 김희중 대주교님을 소개했다. 김 대주교님은 “한국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다. 최 신부님이 작품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으니 어서 식사하고 자유롭게 작품을 보며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짧게 인사하겠다.”는 위트 있는 인사말로 참석한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그 는 “다른 무엇보다 한국주교회의 이름으로 작품을 기증하게 되어 기쁘고 특히 우르바노 대학교에 설치되어 더욱 기쁘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어 필로니 추기경은 “최 신부님은 작품을 세로로 나누어 한국천주교회의 과거, 현재, 미래로 설명 하셨지만 나는 상하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싶다. 윗부분은 성교회의 신학적인 교리를 내포하고 있다. 하느님의 권능과 구원 섭리를 드러낸다. 아랫 부분은 땅 위에 사는 인간의 모습이 들어있다.” 라며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기증식의 마지막에는 미리 준비한 기증서 3부에 필로니 추기경과 김희중 대주교가 서명을 하였으며, 기증서는 인류복음화성, 우르바노 대학교,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에서 각 1부씩 보관하기로 했다. 필로니 추기경이 주례한 축복식을 끝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만찬을 위해 기숙사 학생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음날 최종 점검을 하러 우르바노 대학교를 다시 찾았을 때 외국인 부제들이 작품 앞에 서서 자기나라 국기를 찾고 있었다. 그중 한 부제는 ‘왜 자신의 나라 국기는 없느냐?”고 물었다. 만일 거기에 국기가 없다면 한국전쟁 당시 UN 참전국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자 실망한 얼굴이었다. 2017년에 바티칸에서 전시를 하는 동안에도 이런 해프닝이 종종 있었다. 특히 동양 문화권에 속하지 않은 경우에는 작품이 담고 있는 상징성을 단번에 알아보기가 쉽지 않아 궁금해 하는 부분이 많았다. 최기복 신부님과 비바 몬시뇰은 작품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위해 나전칠화 옆에 작품 설명판을 설치할 예정이며, 작품과 같은 나전칠기로 만들 계획이다. 로마로 여행을 갈 일이 있다면 꼭 우르바노 대학교를 방문해 보기를 바란다. 바티 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 기념 촬영도 하고, 세계에서 세 점뿐인 특별한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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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바티칸 특별전에 출품된 나전칠화 「일어나 비추어라」


「일어나 비추어라」 작품 설명


나전칠화 「일어나 비추어라」는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과 124위 한국 순교자 시복을 기념하여 제작하였다. 그래서 작품 명도 교황방한과 시복식 기념 표어인 “일어나 비추어라”로 하였다. 2014년 옹기 동산청학박물관 주관 아래 작가 김경자 골롬바 교수의 지도로 인간문화재 소목장 김의용, 자개장 강정조, 옻 칠장 손대현이 협동 제작하였고 두산 인프라코어 박용 만 실바노 회장이 경제적으로 후원하였다.


이 작품은 육지의 옻과 바다의 자개 그리고 인간의 솜씨가 함께 어우러져 창출되는 예술작품으로 인류가 염원하는 하늘(天)·땅(地)·사람(人)의 상생화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작품의 전체 구성은 남북한 화합과 생명문화 회복을 기원하는 뜻에서 한국의 민화 〈십장생도〉를 밑그림으로 하고,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시 당부 말씀을 한국천주교회의 과거·현재·미래 세 부분으로 나누어 조형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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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르바노 기숙사 1층 로비 벽에 나전칠화를 설치하고 있는 인 간문화재 김의용 소목장(왼쪽), 나전칠화를 축성하는 필로니 추 기경(오른쪽)

 

 

과거 : ‘기억의 지킴이’에서는 한국 교회의 두 가지 특성, 곧 자생적 교회탄생과 100년간의 박해를 이겨낸 불굴의 순교정신을 형상화하였다. 주어사(走魚寺)는 서양 선교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국인의 자발적 진리탐구에 의해 이 땅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발아시킨 천진암 주어사 강학회를 표상하며, 세 마리의 잉어는 유교 사회에서 새로운 사상과 혁신을 꿈꾸던 젊은 학자들이 불교 사찰에서 천주교 교리를 연구한 끝에 한국천주교회를 탄생시킨 유교 불교 기독교의 종교화합과 창의정신을 상징하고 있다. 종묘(宗廟) 앞에서의 고문과 처형 장면은 유교와 기독교 간의 처참한 종교전쟁을 드러낸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신앙 선조들이 고통과 죽임을 당할 때 예수님과 성모님도 고통을 같이 겪으셨음을 표현하였다.


현재 : ‘증거의 지킴이’에서는 광화문, 서소문 성지,복자 124위, 교황강복 등을 통해 2014년 8월 16일에 거행된 서울 광화문 시복식의 감격과 결의를 되새기며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원용하여 시복식 표어인 “일어나 비추어라”를 상기시키려 하였다. ‘증거의 지킴이’의 실천적 증거는 근본적으로 영적으로 새로 태어남이고, 생명의 밥이 되는 성체의 삶이므로 성체를 작품 중앙에 태양처럼 놓았으며 124위 복자들이 성체를 들고 있다.


미래 : ‘희망의 지킴이’에서는 하느님께 영광의 관을 받은 성모 마리아와 한국교회의 대표 인물 열두 분을 희망의 본보기로 제시하면서 예수님과 성모님을 본받고 따르는 것이 구원과 영생의 길임을 묵주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공동체적으로는 온 세계 인류와 우주 만물이 하느님 앞에서 기쁨의 춤을 추는 강강술래와 천상잔치가 인류의 마지막 목표이며 염원임을 한국 태극기와 한 국전쟁 UN 참전국의 63개 국기, 훈민정음 28자, 신선이 하늘에서 먹는다는 과일 천도(天桃)로 조형화하였다.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교 (Pontificia Università Urbaniana)


전 세계 선교사 양성의 못자리’로 통하는 우르바노 대학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선교 전문가 양성을 지원하기 위해 교황청이 1627년 8월 1일에 설립하였다. 학교명 ‘우르바노’는 설립자 교황 우르바노 8세(Urnanus VIII)의 이름을 딴 것이다. 당시 교회는 크리 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등에 힘입어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으로 선교의 발걸음을 넓혀가고 있었다. 따라서 선교사 파견이 지속적으로 요청됐고, 선교 인력 양성은 교회의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이에 우르바노 8세 교황은 우선적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할 선교사 양성을 위해 대학을 설립했다. 이후 성 요한 23세(Joannes XXIII) 교황은 우르바노 대학교를 교황청립 대학으로 승격시켰다.


교황청립 대학교’는 교황청 교육성 감독 아래 있는 로마에 있는 교회 대학교였으나 1931년 비오 11세의 교령이 반포된 후 세계 각 지역의 주교회의나 교구, 수도회 등에 의해 설립되어 교황청의 인준을 받으면 ‘교황청립 대학교’라는 명칭을 붙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2월에 가톨릭대학교(총장 원종철 신부)가 동북아시아 교회 최초로 교황청으로부터 교회법대학원(원장 한영 만 신부) 설립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9월에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도 교황청립 대학교로 인준받았다.



우르바노 대학교와 한국교회의 인연


우르바노 대학교와 한국교회의 인연은 각별하다.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의 송경정(宋庚正, 안토니오), 전아오(全俄奧, 아우구스티노) 신학생이 1919년에 우르바노 대 학교로 유학을 갔다. 최초의 로마 유학생이었다. 둘은 1914년 신학교가 설립된 첫 해 입학생이었다. 1914년 9월에 입학하여 1917년 6월에 라틴어 하급반을 마치고 1917년 9월에 라틴어 상급반에 진학하여 2년 공부하다 가 유학을 떠났다. 대구대교구 최덕홍 주교, 이기수 몬시뇰, 석종관 신부, 김필곤 신부 등이 당시 입학 동기였다.


두 신학생은 드망주 주교와 여행길에 올라 프랑스 를 거쳐 1920년 1월 20일에 로마에 도착했다. 그리고 26일에 교황 베네딕토 15세를 알현했다. 그 자리에서 교황은 “너희들은 이미 교복을 받았다 새 옷은 아니지만 마음은 새로워지기를 바란다. 한국의 훌륭한 사제가 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들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전아오는 1922년 5월 12일 협심증으로 로마에서 사망하고, 송경정은 결핵에 걸려 1922년 4월에 귀국했다가 이듬해 5월 7일에 집에서 사망했다. 전아오의 묘는 로마 근교 캄포 베라노(Campo Verano)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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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우르바노 대학교의 첫 한국인 유학생 송경정 (오른쪽)과 전아오, 그리고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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