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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눔] 할머니가 남겨준 유산
첨부 작성일 2020-03-05 조회 515

나의 신앙 선조

 

할머니가 남겨준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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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연 엘리사벳 / 서울대교구 서교동 성당




“너는 왜 천주교 신자가 됐어?”
친구들에게 이런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생각지 못한 질문에 처음엔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신자가 됐던 터라,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한 번도 던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제가 천주교 신자가 된 건 부모님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고, 신앙은 제 삶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시작이야 어찌됐든 오랜 시간 믿음을 잃지 않고 이어왔다는 건 의심의 여지없이 온전히 저의 의지이자 선택의 결과입니다.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믿음을 지속할 수 있었던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말입니다. 그건 아마도 제 신앙의 뿌리가 되어 준 가족, 그중에서도 돌아가신 할머니의 존재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셨습니다. 관절이 좋지 않아 걸음이 불편했음에도 주일이면 미사를 드리기 위해 유모차에 의지해 성당을 찾았습니다. 언제나 묵주를 손에 들고 기도를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 모습이 어린 저의 눈에도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 이유는 평상시 할머니는 늘 지치고 고단해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성당에서 기도할 때만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할아버지는 사냥부터 낚시까지 자신의 취미활동에는 적극적이었지만, 가정에는 소홀한 분이셨다고 합니다. 당시 할머니는 한복집을 운영하며 가장의 역할까지 도맡고 계셨던 겁니다. 그제야 조금은 이해가 갔습니다. 어쩌면 할머니에게 기도는 삶의 불안함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을까. 할머니의 기도 지향이 언제나 가족의 안녕이었던 걸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4남매를 키워냈지만 두 아들을 하늘로 먼저 보내고야 말았습니다. 큰일을 겪으며 우리는 혹여나 할머니가 쓰러지시진 않을까, 가슴을 졸였던 게 기억납니다. 하지만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할머니는 손에 들린 묵주를 놓지 않으셨고,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기운을 되찾았습니다. 그야말로 신앙의 힘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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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안교환 다니엘

 

 

할머니의 바람대로 저희 아버지는 성가정을 이뤘습니다. 결혼 후 어머니는 천주교 신자가 되었고, 저와 제 동생도 유아세례를 받고 성당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가게를 하시던 부모님은 주일이면 문을 닫고 함께 미사를 드렸고 성당 봉사도 열심히 나가셨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친가는 물론 외가의 가족들까지 살뜰히 아끼며 돌봤습니다. 베풀었습니다. 이렇게 생활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제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입시에 대한 부담이 컸던 고등학교 시절엔 하교 후 매일 같이 성당에 들러 성체조배를 하곤 했습니다. 그 시간은 제게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주었고, 덕분에 힘든 시기를 문제없이 넘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의 간절한 기도에도 아버지가 결국 하늘나라로 떠났을 때는 어린 마음에 주님에 대한 원망으로 냉담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리를 두었던 그때조차도 절망에 빠졌을 땐 언제나 하느님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와 아버지가 그랬듯 기도를 드렸습니다. 냉담을 하는 중인에도 그것만으로 기운이 났고 다시 일어설 힘이 생겼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결국 제가 다시 돌아 갈 곳은 하느님의 품뿐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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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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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영성체

 


미사와 성서모임, 단체 활동 그리고 봉사까지, 저는 지금 어느 때보다 신앙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들을 제가 더욱 겸손하고 바르게 살아 갈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가끔 상상해봅니다. ‘만약 내가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라고 말입니다. 지금과 비슷할 수도, 혹은 전혀 다른 모습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보다 만족스러운 삶은 아니었을 거라 확신합니다. 할머니에서 아버지로 이어진 신앙의 본보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두 분이 남겨주신 가장 큰 유산인 이 믿음을 저 역시 언젠가 생길 저의 가족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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